
전기차 전환이 만든 새로운 자원 패권 경쟁
전 세계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대전환을 본격화하면서, 이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않던 자원이 갑자기 국제 경제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리튬(Lithium)입니다. “하얀 석유(White Oil)”라고 불리는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핵심 원료로, 전기차 시대의 도래와 함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는 현재의 3~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리튬 수요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 결과, 각국은 리튬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고, 기업들은 배터리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해 전 세계 광산을 사들이거나 투자하며 새로운 ‘자원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리튬 전쟁이 단순히 공급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기업의 생존·미래 산업 패권이 걸린 복합적 경제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원가 구조에서 리튬이 차지하는 비중은 배터리 전체 가격의 30%에 달하기도 하며, 리튬 가격 변동은 전기차 가격에 직결됩니다. 그래서 리튬을 누가 얼마나 확보하는가에 따라 미래 자동차 산업의 승자가 갈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리튬 확보 능력은 특정 기업이나 국가의 경쟁력뿐 아니라, 에너지 전환 속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기차 전환이 왜 리튬 전쟁을 촉발했는지, 리튬 자원 확보 경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경제적 파장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리튬은 단순한 원자재가 아닌, 미래 모빌리티 전체를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튬 전쟁의 원인과 국가·기업 간 경쟁 구조
1. 리튬 수요 폭증: 전기차 한 대가 요구하는 리튬의 양
전기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리튬은 평균 8~10kg입니다. 하이엔드 모델이나 대형 SUV의 경우 15kg 이상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이러한 리튬 수요는 당연히 폭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배터리 업체들은 전기차뿐 아니라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등 다양한 산업용 배터리 수요까지 고려할 때, 지금의 리튬 생산량이 머지않아 크게 부족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2. 리튬의 편중된 매장량: 특정 국가가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
리튬은 지구 곳곳에 있는 자원이 아니며, 특정 지역에 매장량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 리튬의 60% 이상이 남미의 ‘리튬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칠레·볼리비아·아르헨티나에 묶여 있습니다. 그 외에는 호주, 중국, 미국, 캐나다 등이 주요 생산국입니다. 이처럼 리튬의 지역 편중성은 자원 공급 안정성의 위험 요소가 되어, 각국이 리튬 확보에 사활을 걸게 만드는 배경이 됩니다.
3. 중국의 선점 전략과 글로벌 공급망 장악
리튬 전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는 단연 중국입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리튬 광산 투자, 정제 기술 개발, 배터리 제조 경쟁력을 꾸준히 확보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리튬 정제 능력의 60% 이상, 배터리 제조 능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광산은 남미·아프리카·호주에 있지만, 정제와 가공 기술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리튬 공급망 전체가 중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이러한 중국 중심 구조를 견제하기 위해 IRA(Inflation Reduction Act) 등 공급망 정책을 강화하며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배터리와 리튬이 “전략 자산”으로 간주되기 시작하면서, 리튬 확보 경쟁은 국가 안보 수준의 이슈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4. 리튬 가격 폭등과 시장의 불안정성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리튬 가격은 최근 몇 년간 크게 요동쳤습니다. 2021년~2022년 사이 리튬 가격은 10배 이상 폭등한 적도 있으며, 이 가격 변동은 전기차 제조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배터리 가격은 전기차 가격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만큼, 리튬 가격의 움직임은 소비자 가격에도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리튬 가격이 불안정한 이유는 공급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수요가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광산을 개발하는 데는 수년에서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전기차 수요는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즉,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 불균형이 리튬 전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5. 한국 기업들의 생존 전략: 광산 확보와 장기 계약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료 조달에서는 중국에 비해 취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최근 수년간 호주·캐나다·아르헨티나 등에서 리튬 광산 지분을 확보하거나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자원 안정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IRA의 도입으로 한국 기업들은 북미에서 생산되는 배터리에 ‘중국산 원료 배제’ 요구를 충족해야 하고, 이를 위해 중국 외 지역에서 리튬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한국 정부도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와 해외 자원 외교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6. 리튬을 둘러싼 새로운 기술 경쟁: 대체 배터리와 리사이클링
리튬 전쟁은 기술 개발 경쟁을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리튬을 덜 사용하는 배터리 기술(LFP, 전고체 배터리), 리튬 리사이클링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회수하는 리사이클링 산업은 앞으로 수십 조 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 경쟁은 단순히 원자재 전쟁을 넘어 미래 배터리 생태계 전체를 좌우할 핵심 분야입니다. 누가 리튬 의존도를 낮추고, 자원 확보 부담을 덜 수 있는 대체 기술을 확보하느냐가 향후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입니다.
리튬 전쟁은 국가 간 외교 전략, 기업 간 공급망 경쟁, 기술 개발 전략까지 모두 충돌하는 복합적 경제 현상입니다.
리튬 전쟁은 ‘전기차 시대의 석유 전쟁’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중심 자원이 석유였다면, 전기차 시대의 핵심 자원은 바로 리튬입니다. 리튬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전기차 가격·보급 속도·기업의 생존·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리튬 전쟁은 단순한 원자재 확보 경쟁이 아니라 향후 10년, 20년 동안의 기술 패권과 산업 리더십을 좌우하는 전략적 싸움입니다.
리튬 공급망을 선점한 국가는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배터리 기술을 가진 국가는 글로벌 제조업 패권을 잡게 됩니다. 반대로 리튬 확보에 실패한 국가는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한국도 배터리 기술에서는 세계 최정상급이지만, 리튬 공급망에서는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광물 투자·리사이클링·대체 기술 개발 등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리튬은 더 이상 ‘그냥 배터리 재료’가 아니라 전기차 시대의 석유이며,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지각 변동을 이끄는 핵심 자원입니다. 전기차가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을수록 리튬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이 전쟁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하느냐가 미래 산업 패권을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