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에 300만 원을 벌어도, 통장에 남는 돈은 생각보다 적다. ‘아빠의 월급’이라는 말은 많은 가정에서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집세와 대출, 아이 교육비, 식비와 교통비, 부모님 용돈까지 모두를 떠올리게 하는 현실적인 단어다. 겉으로 보기에는 300만~400만 원이면 가정을 꾸리기에 충분해 보이지만, 실제로 월급이 들어와 빠져나가는 과정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왜 항상 통장 잔고는 빠듯한지, 왜 다음 월급날만 기다리게 되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세전·세후 월급의 구조, 가계 고정비 중에서 특히 비중이 큰 보험료의 진실, 그리고 가계부를 쉽게 무너뜨리는 예기치 못한 생활비 리스크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월급 경제학’을 살펴본다. 숫자와 차트 대신, 실제 가정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상황을 통해 월급이 어떻게 쪼개지고 사라지는지, 그 속에서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번 돈이 어디로, 어떤 속도로 흘러가는지”를 아는 일이다.
세후 월급: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전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월급 400만 원’이라고 들으면 꽤 여유 있는 삶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400만 원은 대부분 ‘세전 기준’이다. 회사에서 통장으로 실제 입금되는 금액, 즉 세후 월급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장기요양보험, 소득세, 지방소득세 등을 모두 공제한 뒤의 숫자다. 이 공제 항목들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세전 400만 원이라고 해도 세후 실수령액은 320만~340만 원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세전 300만 원이라면 실수령액은 240만~260만 원대까지 떨어진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회사마다 다른 사내 복지 차감, 통근버스비, 사내 대출 상환액, 노조비, 선택적 복지 포인트 등 추가적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연봉과 실제로 매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구조를 정확히 모른 채 “나는 400을 번다”라는 숫자만 기억한다는 점이다. 이 착시가 과소비와 신용카드 의존을 부르는 첫 번째 함정이다.
예를 들어 세전 400만 원을 받는 가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세후 330만 원이 통장에 찍힌다. 여기서 바로 빠져나가는 항목들을 더해보면 전세자금대출 이자 60만 원, 관리비·공과금 30만 원, 휴대폰·인터넷·TV 결합 통신비 20만 원, 교통비 15만 원, 아이 학원비 40만 원, 부모님 용돈 30만 원 등 기본적인 고정비만 합쳐도 195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식비 60만~80만 원, 간식·카페 비용 20만 원, 생활용품 10만 원 등을 더하면 이미 300만 원을 훌쩍 넘겨버린다.
이처럼 세후 월급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나는 400을 버니까 이 정도는 써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지기 쉽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전체 소득이라고 착각하면, 매달 신용카드 결제일에야 비로소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예산 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후 실수령액’을 기준으로 월급을 바라봐야 한다.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에서 먼저 고정 지출을 뺀 뒤, 남은 돈 안에서 생활비와 여가비를 설정하는 방식이 가장 안전하다.
결국 많은 가정에서 “아빠의 월급이 작아서 힘든 것”이라기보다 “월급이 빠져나가는 구조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쓰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 세후 기준으로 자신의 월급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순간, 왜 매달 통장이 ‘텅장’이 되는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보험비의 진실: 미래를 위한 비용일까, 현재를 잠식하는 지출일까?
“혹시 몰라서 하나 더 들었지.”라는 말은 한국 가정에서 보험을 늘릴 때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멘트다. 가족이 아프거나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불안감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이 불안이 때로는 과도한 보험 가입으로 이어지면서, 정작 현재의 삶을 짓누르는 고정비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실제 많은 가정에서 월평균 보험료는 30만~50만 원에 이른다. 부부 각각 종신보험, 실손의료보험, 암보험, 실버보험, 자녀 교육보험, 어린이보험, 운전자보험 등 다양한 상품을 가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보험료만으로 월급의 15~20%가 빠져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친척이나 지인의 추천, “이 상품은 이번 달까지만 가입 가능하다”는 식의 영업 멘트를 듣고 무심코 가입한 상품들이 더해지면, 본인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보험이 여럿 섞이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본인이 어떤 보험을 왜 들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얼마를 보장받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혹시 몰라서”, “주변에서 다 드니까”라는 이유로 가입한 보험은 실제 필요와 상관없이 중복 보장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보험료가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체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통장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는 5만 원, 7만 원, 10만 원이 모이면 어느새 한 가정의 가처분소득을 크게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은 분명 필요하다. 큰 병이나 사고, 예상치 못한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하지만 그 목적은 ‘불안을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보험을 다 드는 것’이 아니라,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험은 필요 이상으로 많으면 득보다 실이 커진다.
가정 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보험을 점검해야 한다. 내 보험증권을 모두 꺼내 같은 보장을 중복으로 갖고 있는 상품은 없는지, 해지환급금이 거의 없는 저축성 보험은 아닌지, 지금도 유효한 상품인지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과도한 상품은 정리하고 꼭 필요한 보장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좋다.
보험은 잘 설계하면 인생의 큰 위기에서 가정을 지켜주는 든든한 안전망이 된다. 하지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불안만으로 가입을 늘리면, 매달 월급을 갉아먹는 블랙홀이 된다. ‘미래를 대비한다’는 명분이 ‘현재를 희생시키는 지출’로 변하지 않도록, 보험비는 특히 각별히 관리해야 할 고정비다.
생활비 리스크: 예산 바깥에서 벌어지는 진짜 위기
가계부가 무너지는 지점은 늘 비슷하다. 바로 ‘예상에 없던 지출’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정은 월세·대출이자, 관리비, 통신비, 교통비, 보험료, 학원비 같은 고정비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가계부에 따로 적어두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지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생활비 리스크다.
부모님 병원비, 갑작스러운 치과치료비, 아이 학교 준비물·수학여행비, 자동차 수리비, 생일·경조사 비용, 예상 밖의 외식·회식, 명절 선물비, 계절별 옷 장만 비용 등은 대부분 ‘이번 달에만 특별히’라는 이름으로 예산을 뚫고 나온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특별 지출’이 매달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나타난다. 특별한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사실상 ‘상시 지출’에 가깝다.
아빠의 월급에서 각종 고정비를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생각보다 적다. 어떤 가정은 모든 필수 지출을 빼고 남은 돈이 10만~30만 원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병원비 20만 원, 자동차 수리비 30만 원이 한 번에 몰려오면, 그 순간 가계는 적자로 돌아선다. 많은 가정이 이 지점에서 적금을 깨거나, 신용카드로 버티며 ‘다음 달부터 다시 아끼자’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다음 달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이 악순환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비정기 지출을 위한 생활비 여유 계정’이다. 월급에서 고정비와 기본 생활비를 제하고 난 뒤, 반드시 일정 금액을 ‘예상 밖 지출용’으로 따로 떼어두는 것이다. 금액이 크지 않아도 괜찮다. 매달 5만~10만 원씩만 별도의 계좌나 봉투에 쌓아두면, 1년 후에는 60만~120만 원의 안전판이 생긴다. 이 돈은 여행비나 쇼핑이 아니라, 정말 계획에 없던 지출이 발생했을 때만 사용하는 비상 생활비 계정이다.
이러한 여유 계정이 있으면, 갑작스러운 지출이 생기더라도 적금을 깨거나 카드를 돌려막을 필요가 줄어든다. 무엇보다 지출을 통제하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생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불안 대신, “그래도 대비해 둔 돈이 있다”라는 현실적인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 생활비 리스크는 완전히 없앨 수 없지만, 미리 준비해 두면 충분히 완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아빠의 월급’은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한 가정을 지탱하는 이야기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그 월급이 어디서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다. 세후 실수령액을 기준으로 예산을 짜고, 보험료라는 고정비를 점검하며, 예기치 못한 생활비 리스크에 대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가정을 경제적 위기에서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월급을 그냥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아니라, 가족의 삶을 설계하는 도구로 바라보는 순간부터 경제에 대한 관점이 바뀐다. “왜 항상 돈이 모이지 않을까?”에서 “어디를 조정하면 이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달라진다. 바로 그 지점이 진짜 현실 경제학의 시작이며, 아빠의 월급이 단순한 부담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자원이 되는 출발점이다.